전체 글66 이희승, 국어학 발전의 선구자이지만, 일본어 사용 순응이력 국어학 연구와 독립운동 지원 활동이희승(李熙昇, 1896~1989)은 한국 국어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학자로, 국어학의 체계를 정립하고 한글 연구에 앞장섰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해방 후에도 국어학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독립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는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는 데 기여했으며,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조선어학회는 일본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국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으며, 이희승도 학자로서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제의 동화정책에 맞서 한국어를 보존하고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2025. 3. 23. 임화, 활발한 사회주의 문학운동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옹호의 비극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문학의 선봉임화(林和, 1908~1953)는 한국 근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문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문학적 활동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한 실천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문학 활동을 시작한 임화는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문학 운동에 뛰어들었다. 카프는 식민지 조선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현실을 반영하는 문학을 지향했으며, 임화는 그 중심에서 활발한 창작과 비평을 전개했다. 그의 시와 평론은 주로 피지배 계층의 삶을 조명하고,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다.임화는 문학을 통해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사.. 2025. 3. 22. 변관식, 조선 후기 남종화 계승자 일제시대 선전 작품 제작 전통 회화의 계승과 한국화 발전변관식(卞寬植, 1899~1976)은 조선 전통 회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한국화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주로 산수화와 사군자 등을 그리며, 조선 후기 남종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그의 작품에는 한국적 정서가 깊이 배어 있으며, 전통적인 기법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변관식은 한국의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한국적 미감을 살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산수화는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정신적 깊이가 담긴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는 한국적인 색채와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변화에 맞춰 다양한 시도를 하며 한국화의 발전에 .. 2025. 3. 21. 김은호, 조선화의 전통계승자이지만 친일 문화 정책 협력 조선 미술계의 발전을 이끈 김은호김은호(金殷鎬, 1892~1979)는 한국 근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으로, 특히 동양화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의 작품은 세밀한 필치와 정교한 색채 표현이 특징이며, 주로 초상화와 역사적 장면을 그리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그는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쌓으며, 한국 화단에서 영향력을 키워갔다. 조선미전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주도한 미술 공모전으로, 당시 한국 화가들에게 등용문의 역할을 했으며, 김은호도 이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는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전통 미술의 계승과 발전에 힘썼고, 많은 제자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 화단에서 .. 2025. 3. 20. 이흥렬, 독립운동과 친일 논란을 넘나든 음악가의 삶 독립운동과 음악적 민족주의: 조선을 노래하다이흥렬(李興烈, 1909~1980)은 한국 가곡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곡가로, '봄맞이', '녹턴' 등의 아름다운 가곡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삶을 단순한 음악가로만 평가하기에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초반, 그는 민족의식을 음악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1930년대는 한국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흥렬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초기에는 서양 음악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전통적인 가락을 서양식 화성법과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했으며, 이를 통해 일제의 문화적 동화 정책에 맞서 한국적인 정서를 지키려 했다.그의 초기 작품들은 민족주의적인 .. 2025. 3. 19. 현제명, 음악가의 두 얼굴 독립운동과 친일 논란 독립운동가로서의 현제명: 음악으로 민족의식을 깨우다현제명(玄濟明, 1902~1960)은 한국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 한국 서양음악 발전에 큰 기여를 했으며, 특히 한국 가곡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단순한 음악가로만 기억되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나도 복잡하다. 현제명은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하며 민족의식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1920년대 현제명은 일본 도쿄에서 음악을 공부하면서 조선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한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으며, 당시 조선 청년들에게 음악을 통해 민족정신을 심어주려 했다. 특히 그의 곡 중 일부는 독립운동가들이 애창하기도 했다고 전해진.. 2025. 3. 18. 이전 1 ··· 3 4 5 6 7 8 9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