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희승, 국어학 발전의 선구자이지만, 일본어 사용 순응이력

by 멀리서 보면 모두 푸른달 2025. 3. 23.

국어학 연구와 독립운동 지원 활동

이희승(李熙昇, 1896~1989)은 한국 국어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학자로, 국어학의 체계를 정립하고 한글 연구에 앞장섰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해방 후에도 국어학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독립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희승, 국어학 발전의 선구자이지만, 일본어 사용 순응이력
이희승, 국어학 발전의 선구자이지만, 일본어 사용 순응이력

 

그는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는 데 기여했으며, 조선어 사전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당시 조선어학회는 일본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한국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으며, 이희승도 학자로서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제의 동화정책에 맞서 한국어를 보존하고 조선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어학회 사건 당시 직접적인 연루는 피했으나, 동료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하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이는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에 저항하는 중요한 학문적 활동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면, 국어학자로서의 공헌과는 별개로 친일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 드러난다.

 

친일 행적과 논란

이희승의 친일 논란은 주로 일제강점기 후반부의 행적과 관련이 있다. 그는 해방 전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주도하는 학술 활동에 참여했으며, 일부 친일적 발언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1940년대에는 조선어학회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일본어 사용이 강요되었고, 이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된다.

그가 일제가 주관한 학술 행사에 참석하고, 일본의 정책에 협력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주장은 그가 민족주의적 학자로 평가받는 것과 상충되는 부분이다. 당시 한국의 지식인들은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았으며, 일부는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희승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활동했으며, 이것이 친일 행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그의 친일 논란은 2000년대 이후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조명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직접적으로 일본의 전쟁을 찬양하거나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의 정책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해방 이후의 평가와 역사적 재조명

광복 이후 이희승은 한국 국어학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으며, 한국어 연구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국어학의 기초를 다지고 표준어 정립에 큰 역할을 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학문적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국어학자로서 한글 맞춤법을 정비하고, 표준 국어 대사전을 편찬하는 등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연구는 한국어 교육과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한국어학 연구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의 친일 논란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의 학문적 업적과 친일 행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평가하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친일 행적을 이유로 그를 비판하는 입장과,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으며, 그의 연구와 행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희승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그는 국어학자로서 한국어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기 후반부의 행적으로 인해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연구 성과와 역사적 행적을 균형 있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