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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조선화의 전통계승자이지만 친일 문화 정책 협력

by 멀리서 보면 모두 푸른달 2025. 3. 20.

조선 미술계의 발전을 이끈 김은호

김은호(金殷鎬, 1892~1979)는 한국 근대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으로, 특히 동양화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의 작품은 세밀한 필치와 정교한 색채 표현이 특징이며, 주로 초상화와 역사적 장면을 그리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쌓으며, 한국 화단에서 영향력을 키워갔다. 조선미전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주도한 미술 공모전으로, 당시 한국 화가들에게 등용문의 역할을 했으며, 김은호도 이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는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전통 미술의 계승과 발전에 힘썼고, 많은 제자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한국 화단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김은호, 조선화의 전통계승자이지만 친일 문화 정책 협력
김은호, 조선화의 전통계승자이지만 친일 문화 정책 협력

 

김은호의 작품은 전통적인 미술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서구적인 요소를 일부 차용하여 새로운 한국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는 한국적 미감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조선미전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한국 화단의 기준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한국 근대 미술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왕실을 찬양하는 작품과 친일 논란

그러나 김은호의 행보는 단순한 예술 활동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을 찬양하는 작품을 다수 제작했다는 점에서 친일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그는 일본 왕실을 기리는 그림을 제작하며,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화 사상을 주입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친일 작품으로는 일본 왕세자의 초상화와 일제의 정책을 미화하는 벽화 등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당시 일제가 문화 예술을 이용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맥락과 맞물린다. 김은호는 일본이 주최한 여러 전람회에서도 활동하며, 친일 미술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일부에서는 그가 단순히 시대적 상황에 순응했을 뿐이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이 단순한 개인적 생존을 넘어, 적극적으로 일제의 문화 정책에 협력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그가 광복 후에도 친일 행적에 대해 별다른 반성과 해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문제로 지적된다.

 

해방 이후의 평가와 역사적 재조명

광복 이후 김은호는 한국 미술계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는 한국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앞장섰으며, 한국미술협회 활동을 통해 미술 교육에도 기여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예술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미술적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이 등재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이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친일 활동이 미술적 성과와 분리될 수 없다는 논의가 진행되었으며, 예술가로서의 업적과 친일 행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김은호는 한국 전통 미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의 선전 도구로 활용된 작품을 제작하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단순한 미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그의 시대적 선택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필요함을 시사한다.